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가락동-방이동 고분군 (문단 편집) === 조사경과 및 내용 === 1970년대 잠실지구를 개발하면서 급속하게(...) 발굴 조사가 행해졌다. 방이동 고분군은 상기 가락동3,4,5,6 호분과 같이 조사되었다. 당시 발굴의 수준은 수백미터 간격으로 탐색 트렌치(구덩이)를 파거나, 육안 관찰로 봉분이나 유물산포지를 확인하고 발굴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수많은 유적들이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얼마나 날림으로 했는지 일제강점기때 조사된 분포도에 표시된 고분의 반의 반 정도 조사했을 뿐이었다[* 당시 일제강점기 조사 도면자료는 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연구자들은 이를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외따로 떨어진 가락동 3호분 주변에서 수많은 백제 고분이 소실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락동 3호분과 같은 백제 횡혈식석실분은 표면상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지하식인데다가, 봉분도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